“백범 김구, 그는 불멸의 독립투사이며 역경을 극복하고 끝내 광복군을 창설한 위대한 통수권자이다. 대일 무력항전만이 독립을 앞당기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군을 창설하고 육성했던 백범의 독립정신과 통수리더십은 우리 국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군에 큰 합의를 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수없이 겪어 왔다.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큰 민족적 사건은 나라를 잃은 것과 36년 만에 나라를 다시 찾은 일이다. 36년간이라는 긴 세월의 일제치하를 통해 우리 국토는 처참하게 수탈되었고, 백성들은 노예상태로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참혹한 인권유린을 당했다. 세계 식민지 역사에 있어 이처럼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사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8월의 하늘을 보는 마음이 어느 때 보다 저려온다.
매년. 8월이 되면 우리는 나라 없는 설움을 절감하고 무엇보다 튼튼한 국방력이 없으면 타민족에게 먹히고 만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도 만약 일본이 미국에 패하지 않고 승리했다면 아마도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더욱 가혹했을 것이며, 결국 한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은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은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광복이 있기까지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남의 나라 땅에서 유랑하며 목숨을 걸고 싸웠던 수많은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해온 애국지사들의 독립투혼과 희생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광복은 그만큼 빨리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광복은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얻어진 결과일 뿐이라고…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독립군과 광복군은 각각 시대는 다르지만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경이로운 투쟁으로 일본군을 격파하여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며,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사선을 넘나들며 대일항전을 전개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독립은 그만큼 빨라지게 된 것이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은 중국대륙의 험하고 모진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으며, 광복군을 지휘하는 통수권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조국의 광복을 앞당기는데 일조해온 위대한 분이다.
이런 점에서 광복 78주년을 보내면서 애국 진정성 리더십 측면에서 그동안 소홀히 여겨왔던 백범 김구의 뛰어난 통수 리더십과 군사전략을 조명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51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나 일찍이 직업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군생활 중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북한학 석사과정과 총신대 신대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캐나다 크리스천대학교에서 상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27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국방대학교 군전임교수, 국방대학교 국방리더십개발원 연구교수,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전문연구원, 국방정신전력원 전문연구원, 주식회사 잡뉴스 솔로몬 서치 이사 및 컨설턴트, 국가보훈처(지금의 보훈부) 나라사랑 전문교수 등 역임했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지식기부강사를 비롯한 독도의용수비대 연합회 소속 전문강사, 서울 서부지방법원 협의이혼 상담위원, 행정안전부 안전교육 전문강사, 한국군사문제 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국방대학교 국방리더십개발원 연구교수로 5년간 근무하면서 리더십에 관한 독서활동과 리더십 콘텐츠 개발, 리더십 사례 연구 등에 주력하여 왔으며 주로 글로벌 현장 리더십과 국내외 명장 리더십을 연구하여 국방리더십 저널지와 대외기관에 기고하였다. 고급제대 리더십 프로그램개발팀에 들어가 영상 프로그램도 개발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 운영과 전자책을 집필하고 있다.